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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전 유작

꿈을 펼치려다 일찍이 유작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알아볼 것이다. 첫 번째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최초의 유작 사례는 일제 강점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일본 유학으로 클래식 성악가가 꿈이었던 윤심덕은 대중가요로 돌아서고 연극무대를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29세의 이른 나이로 신분의 한계와 사회분위기로 인해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노래는 당시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서울에서 정말 유명한 스타였다고 한다. 그 시절은 성악 자체를 공부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풍부한 성량과 당시의 표현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마지막 남기고 간 차중락의 새노래(1968)>의 주인공 차중락이다. 그는 잘생긴 외모에 체구도 좋았고 노래도 부드럽게 잘 불러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도 있다. 그는 바쁜 연예계 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어 1968년 11월 급성 뇌막염으로 쓰러지게 되었고 2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정말 이렇게 보면 현대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때가 많다. '자유'와 의학의 발달 등을 말이다.  세 번째는 배호 <0시의 이별/마지막 잎새(1971)> 이다. 저음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감정을 휘어잡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등은 아직도 중년의 애창곡이라고 한다. 그는 29세 어느 날 감기몸살에 걸렸는데 병세가 심각해져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상하게도 회복불능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안타깝게도 앰뷸런스 안에서 별세했다. 그 당시 많은 여성팬들이 운구행렬에 소복을 입었다고 한다. 오래 지난 노래지만 아직도 유작으로 평가받는 그의 명곡인 <0시의 이별>, <마지막 잎새>, <울기는 왜 울어>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음은 하수영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1976)>이 있다. 힘든 상경 생활 끝에 1976년에 발표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인기가수가 된다. 인기가 많아서 영화 제작이 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다음 해 교통사고가 나고 돌아온 이후 별다른 히트를 치지 못했고 다시 밤무대를 전전긍긍하던 그는 1981년 자신이 운영하던 부산의 한 가구점에서 뇌출혈로 쓰러졌고 결국 1982년 별세했다. 다음은 김인순의 <여고졸업반 (1975)>이 있다. 이화여고 재학 시절부터 가창력이 뛰어나 유명했고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1975년 임예진 주연의 영화 '여고 졸업반'의 주제가를 녹음했고 이게 굉장히 히트하게 되면서 인기가수가 되었다. 그 뒤로도 연이어 여러 곡들을 발표하고 활동했다가 결혼 후 활동을 잠정 중단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1988년 활동을 재개했지만 하루 스케줄을 끝내고 이동하던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3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글을 쓰면서도 느끼지만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생이 이렇게 알 수 없는 길로 언제나 인도를 하게 되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잘 받아내야 하는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다음은 김정호의 <KIM JUNG HO LIFE (1983)>가 있다. 그는 데뷔 초 남성듀오로 활동해 대중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1974년 <이름 모를 소녀>를 발매했고 히트하게 되면서 인기가수가 되었지만 대마초 사건이 터져 잠정 활동 중단을 하게 된다. 그렇게 군대를 갔고 말년에 감기가 걸렸는데 너무 악화되는 바람에 폐결핵에 걸려 요양까지 하게 된다. 대충 감이 오겠지만 1983년에 낸 앨범은 마지막 히트곡이자 유작이 된다. 그는 1985년 33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다음으로 한국 대중가요 명반 1위를 가지고 있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1987)>가 있다. 그는 앨범이 단 한 장, 이 앨범뿐이다. 이 앨범 한장은 대중음악의 수준을 크게 올렸고 지금 현 대중음악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의 기반과 기틀이 잡힌 곡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대학시절 조용필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나와 가요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솔로 앨범을 내었지만 사실 큰 반응은 없었다. 현대에 와선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역사를 쓴 앨범 1번으로 꼽지만 말이다.  그가 알려진 시기는 그가 사망한 1987년 11월 1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교통사고로 별세했으며 앨범을 낸 지 3개월 뒤였다. 개인적으로 유재하의 다음 앨범이 너무 궁금하다. 그는 또 어떤 새롭고 감성적인 노래를 만들었을까 , 그리고 어떤 대중음악의 영향을 끼친 앨범을 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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