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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개요와 역사

영국의 4인조 197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 퀸은 다양하고 폭넓은 록 밴드 음악을 했다. 유명한 곡이 굉장히 많다. 영화로도 나온 <보헤미안 랩소디> 그리고 <위 아더 챔피언>,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 등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그룹이다. 2018년에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 받았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퀸은 1970년대를 휘어잡은 그룹이다.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 로저 테일러 이렇게 4명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하였으며 대중들에게 통했다는 점이 큰 명성을 얻는 이유가 되었다. 퀸 결성에서 가장 주도적인 인물은 브라이언 메이였고 처음엔 팀 스타펠, 로저 테일리 이렇게 '스마일(Smile)'이라는 밴드를 만들었었다.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진짜는 프레디 머큐리를 만났을 때라고 보면 되겠다. 시간이 지나서 팀 스타펠이 스마일을 탈퇴하고 'Humpy Bong'이라는 밴드로 이적을 하게 되면서 프레드릭 벌사라를 멤버로 넣으면서 스마일에서 퀸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참고로 프레드릭 벌사가 지금의 프레디 머큐리다. 퀸 활동을 하면서 그의 애칭인 '프레디'를 따서 '프레디 머큐리'라고 바꿨다고 한다. 퀸은 처음엔 대학 공연을 돌면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73년에 1집 앨범을 내게 되었고 나름 호평을 받았다곤 하나 대중들에게 큰 호감을 받진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뒤에 또 2집을 발표했으니 그 마저도 큰 호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3집에서 히트를 치게 되면서 결국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2집까지의 시간동안 그 전설의 밴드도 힘든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속사를 옮기고 1975년 4집 앨범을 발표하게 되고 이때는 특히나 프레디 머큐리가 성 정체성에 혼란이 오던 시기이자 음악적으로 굉장히 깊은 생각을 많이 하던 시기라고 한다. 클래식과의 결합으로 영화로도 유명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들었고 노래만 6분이나 된다. 발라드, 오페라, 록 등 다양한 장르를 한곡으로 선보이는데 이는 처음엔 음원을 내지 못했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음반을 내었는데 결국 영국 차트 1등, 미국 빌보드 9위까지 가는 등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게 된다. 그 뒤로 5집 앨범을 내었고 <Somebody to Love>의 곡 등 인기를 이어가면서 세계적인 명성에 발돋움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6집 앨범이 나오고 여기서 <We Are The Champions>, <We Will Rock You>등의 시대를 초월한 명곡을 내면서 전 세계적인 밴드그룹이 되었다. 그 뒤로도 총 14집 앨범까지 내었고 그들은 록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시도를 했다. 1985년에는 웹블리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난민을 돕기 위한 라이브 자선공연에 참가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얼마나 큰 공연이었냐면 위성중계만 100여 국가에서 했고 시청자가 19억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60억 이하의 지구인에서 19억이면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문도 들기 시작했던 무렵이기도 하다.

프레디 머큐리 사망이후 그리고 영향력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문이 들고 몇 년 뒤인 1991년 11월 14일에 결국 사망했다. 소문이 사실임을 프레디는 밝혔고 그들은 결국 전설적인 밴드로 알려지게 된다. 1997년 존 디콘은 은퇴하게 되고 나머지 두 명인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는 계속 퀸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음악인들과의 협업으로 하고 있다곤 하는데 한국에도 2020년 내한공연에 왔다. 2018년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되면서 퀸의 제2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들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록, 발라드, 오페라, 재즈, 디스코, 포크,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록을 기반으로 결합시키는 등의 음악적인 면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대중들에게 분명 통했다는 점이 의의가 있다. 하지만 록 자체만을 중시하는 평론가들에겐 굉장히 혹평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대중과 평론가들의 기준은 역시나 다르고 평론가들은 보수적인 면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내고 그것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은 결국 대중들이 가장 알기 쉽고 한 장르의 평론가들은 단순히 그 장르에 국한되어 평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01년엔 이미 로큰룰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그들의 창의적인 예술은 일생 동안 보여준 음악가들에게 수여하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게 되는 영예를 가진다. 필자도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프레디의 성 정체성과 음악적 장르의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와 그것에 부딪히는 과정들이 보이는데 그걸 이겨내는 자신감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집과 2집의 실패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감이 있었고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큰 성공을 누리고도 끝없이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본다. 그들은 세계적인 음악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는 역사를 만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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